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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기양 울산 새생명교회 목사
목사에게 생명・평화 활동 자체가 선교
혐오와 차별, 교회에서 없어야 하지만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거대담론 보다 생활 속 평화운동이 중요

울산CBS '시사팩토리 100.3'×울청넷 '나울통'
[인터뷰]한기양 울산 새생명교회 목사

평화운동은 생명운동 바탕으로 이뤄져
목사에게 생명・평화 활동 자체가 선교
원전,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기술
사용후핵원료재검토위, 공정성 상실해
민관 거버넌스로 시민사회 합의 얻어야
대북지원 모니터링 위해 24차례 방북
일부 교계, 방북 이유로 친북좌파 매도
혐오와 차별, 교회에서 없어야 하지만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정전 67주년 맞아 '평화순례' 행사 기획
오는 25일 태화강국가정원서 개최 예정
거대담론 보다 생활 속 평화운동이 중요

■ 방 송 : 울산CBS FM 100.3
■ 방송일 : 2020년 7월 23일 오후 5:05~5:30
■ 진 행 : 김유리, 조강래
■ 출 연 : 한기양
 

■ 음 악 : 길기판
■ 기 술 : 강승복
■ 작 가 : 장민창
■ 조연출 : 엄유미
■ 연 출 : 김성광

※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의 제작 지원을 받아 울산 CBS와 울산청년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시사팩토리 100.3 목요판'이 왔습니다. 25분여는 라디오 주파수 FM100.3과 온라인 노컷뉴스로, 나머지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과 유튜브에서 '나울통'을 찾아 들으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김유리> 여러분 안녕하세요, 7월 23일 목요일 '시사팩토리 100.3', 김유리입니다. 지난 7월 2일 처음으로 저와 청년 진행자가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목요판을 시도했었는데요, 당시 목요판은 '우리 지역사회 청년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이를 반영해서 방송하자'라는 취지에서 기획됐었습니다.

◇조강래> 네, 맞습니다. 청년 진행자 조강래입니다. 그 취지에 공감하는 청취자들 요구에 맞춰 3주 만에 김유리 아나운서와 함께 공동으로 목요판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이렇게 금요판에 이어 목요판까지 시민참여형 방송을 제작하는 울산CBS를 보면서 '이게 바로 시민을 위한 라디오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유리> 이야 멋진 말씀이신데요, 저도 옆에서 보면서 한 가지 느낀 바가 있는데, 금요판 방송을 진행하는 우리 강래씨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 공동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시민들이 울산CBS 라디오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출연자도 우리 한반도 공동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분이시라면서요?

◇조강래> 네, 맞습니다. 오는 27일 월요일은 한국전쟁 정전 67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정전'이 아닌 '종전', 그리고 '전쟁' 아닌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정전 기념일 이틀 전인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에 모여 '평화순례'를 하게 됩니다. 오늘 이 평화순례를 기획한 평화운동가 한 분을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김유리> 네, 먼저 노래 듣고 오겠습니다.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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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정전협정 67주년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7월 27일이 바로 정전 67주년인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한기양 목사와 인터뷰 준비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한기양> 네, 안녕하세요.

◇조강래>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청취자들께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한기양> 저는 울산 새생명교회 담임목사이고요, 제가 1989년부터 울산, 그때는 공해추방운동이라고 했는데, 울산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하고 쭉 맡아오다가 2002년부터는 또 대북 북한 방북할 일이 생겨서 그 이후부터는 어찌보면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고 하게 됐는데, 그동안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 평화통일위원장을 4년간 맡았다가, 또 이번에 잠시 또 맡았어요. NCCK 화해통일위원을 맡고 있고, 현재 평화통일교육센터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김유리> 오늘 평화운동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서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난달 초에 울산 북구에서 월성원전 내 핵폐기물 저장시설인 '맥스터' 증설과 관련해서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됐었잖아요. 목사님께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에서 고문을 맡으셨더라고요, 이것도 평화운동의 일환인가요?

◆한기양>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생명운동을 바탕으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평화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사실 생명 관련된 환경문제는 평화나 정의운동이나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로서는 생명의 존엄이 훼손되거나 생명이 위협 받는 것에 대해서는 가로막고 서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생명을 풍성하게하시는 주님의 제자답게 그렇게 해야 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 핵쓰레기 문제가 사실은 우리 울산으로서는 굉장히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찌보면 위험한 것이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뭔가 필요한 행동도 해야 된다 그렇게 봤고요. 그런 차원에서 참석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강래> 그렇군요. 그러면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와 관련해서 공론화를 진행한 사용후핵원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회에 시민사회가 재검토위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 해체 요구는 왜 나오는 것인가요 목사님?

◆한기양> 사용후핵원료재검토위원회라고 정식명칭인데, 이게 공정성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졸속으로 진행하면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원래 위원이 15명이었습니다. 작년 연말에 4명이 그냥 사퇴를 했어요. 그리고 지난달에 정정하 전위원장이 공정성이 훼손되었고 자기로서는 위원장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사퇴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김소영 위원장을 그냥 일방적으로 임명을 하고서 현재 10명이 그냥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나 혹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산업자원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빨리 해체하고 새롭게 하자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금 알고 넘어가야 될 것은 현재 월성 핵발전소 안에 고준위핵폐기물이 나왔잖아요. 그거를 저장할 곳이 없어서 지금까지 임시보관을 하고 있는데, 임시저장소가 현재 저장물이 95.36%입니다. 거의 포화상태에 와있고, 2020년 3월이 되면 완전히 포화상태가 돼서 더 이상 가동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지난번 2016년에 이 위원회를 기본 계획을 잡으면서 2029년에 영구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고, 2036년에 중간저장시설을 만들고, 그리고 2053년에 영구처분장을 만든다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탈핵을 선언하게 되고, 이게 지금 처분장을 만든다고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사실 핵처분장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제 만들기도 하고, 기술이 없어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거든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런 상태는 지금 안 되지 않느냐 이 위험한 것을. 그렇게 문제제기를 긴급 동의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강래> 그럼 '원전과 원전 관계시설 설치에 대한 논의는 국가 주도가 아니라 시민 주도로 이뤄져야 된다'는 주장으로 이해를 좀하면 될까요?

◆한기양> 아니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안 되고요. 함께 숙의하자. 다시 말하면 협치라고 할 수 있죠. 민관이 거버넌스를 형성해서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거는 안 된다 이런 얘기예요, 국가가 마음대로 그냥 국민들 시민들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핵산업의 핵추진자들 입장만 가지고 가면 안 되고, 또 시민들도 우리가 하겠다 시민들이 어떻게 그걸 합니까 국가가 결국 해야 되는데 결정하는 것을 함께 국민적 합의를 얻자 갖자 그런 겁니다.

◇김유리> 합의를 갖는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잖아요.

◆한기양>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걸 풀어내지 않으면 이거 해결 안 돼요. 잘 알다시피 핵영구처분장을 만든다는 부지 선정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요.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그러니까 이 부분을 국민적 합의를 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그냥 둘 수가 없어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알지만, 이게 계속해서 식혀야 돼요. 한 몇 십년간 식힌 다음에 다시 영구처분장을 가야되거든요. 그런데 영구처분이라고 하는 게 10만년이에요.

◇김유리> 10만년이 어떤 의미예요?

◆한기양> 독성이 절감되는 반감기가 10만년이에요. 그럼 우리 인간의 역사로 보면 이건 영원이에요. 그 사이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저장시설 해놓았던 게 삭을 수도 있고요. 계속해서 관리를 해 나가야되는 엄청난 숙제, 인류의 숙제예요 사실은. 해결하지 못할 것을 지금 일을 벌려놓고 있다는 것. 거기에 에너지 의존한다는 것. 이거는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김유리> 그럼 이제 평화운동으로 이야기를 또 넘어가볼게요. 한기양 목사께서는 종전 67주년을 앞두고 '평화행진'을 기획하셨잖아요. 이 행사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설명해주세요.

◆한기양> 평화행진이 아니고 평화순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정전 67주년이 월요일인데, 27일인데, 한 이틀 전에 사람들 모이기 좋게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 다시는 민족상잔의 참혹한 아픔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그런 결의와 함께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종식 선언을 하고 민족 화해, 협력, 그리고 공동번영의 평화의 시대로 가자라고 하는 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함께 기도하면서 걷자. 평화순례라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유리> 그렇군요. 일반인들이 다 참여를 하는 거네요.

◆한기양> 네, 아무나.
 



◇김유리> 그러면 일상에서 이렇게 또 실현가능한 방식으로 평화순례를 기획한 이유, 분명히 있으실 것 같은데, 기획 이유 좀 들려주실 수 있나요?

◆한기양> 보통 평화통일 이런 얘기하면 굉장히 거시적인 접근을 하잖아요. 어려운 숙제고, 우리는 할 필요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아주 진지하고 심각하게 대응하게 됩니다. 물론 외교안보 문제나 정치경제 문제나 국제관계 심각하죠. 근데 우리는 그럼 가만히 손 놓고 구경만 해야 되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 대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뭘까. 그리고 또 이런 심각하고 거시적인 문제들을 좀 더 이렇게 산책하면서도 물론 진지하지만 가볍고 좀 즐겁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이런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국가정원 얼마나 좋습니까. 거기 산책하듯이 평소에는 그냥 산책하는 건데, 이날은 좀 마음을 모두어서 줄을 한 줄로 차례차례 한걸음씩 띄어서, 코로나니까 어차피 한 1m 띄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우산을 준비했어요. 파란 우산을. 우산을 쭉 들고 나가면 평화의 물결처럼 보이지 않겠어요? 그렇게 해서 참석하는 본인들과 참석 안 하는 구경하는 옆에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아 저게 뭔가?' 하게 되면서 '평화가 중요하지' 이런 생각을 일상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중요한 것은 온 가족이 어린아이와 함께 어른들과 함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 그 동안에 시위하면 무슨 집회하면 참석하기 조금 꺼리지 않습니까.

◇김유리> 거부감이 들죠.

◆한기양> 네, 그런 게 있는데 이런 문화를 좀 바꾸자. 그래서 시민들이 데먼스트레이션 혹은 의사표시를 이렇게 즐겁고 쉬운 방식으로 하는 것을 좀 만들어내서 일종의 집회나 시위 문화도 재밌게 바꾸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유리> 그렇군요. 그럼 이 '평화순례'에 모태가 된 그런 행사가 있나요?

◆한기양> 작년에 한 번 했었죠.

◇김유리> 어떤 행사요?

◆한기양> 4월 27일에 4·27 판문점 선언 일주년을 맞아서 인간 띠 잇기 손잡기를 했었어요. 그때 하면서 울산에서도 국가정원 그쪽 대밭 강변에 줄 잡고 서서 한 1,500명 모여서 그때 시장님도 오시고, 교육감님도 오시고, 한 1.5km 연결을 했어요. 오후 4시 27분에. 그걸 할 때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까 이랬는데, 참석한 사람들이 다 너나할 거 없이 좋아하더라고요. 즐겁고. 굉장히 즐겁게 하니까 좋았어요. 그런데 이것이 또 계획된 것보다 더 앞에 있었던 일은 2013년 제가 총회 평화통일위원장을 맡으면서 맨날 무슨 토론회니 강연회니 혹은 아까 말했던 집회니 이런 게 아는 사람만 오구나. 관심 깊은 사람만 오지 일반인들은 거기 관심도 안 갖는 거예요. 그래서 계획한 것이 평화통일기행이었어요. 그래서 백두산을 한번 같이 갔다 왔어요. 그때 우리 교단에 모집을 해서 그러고 나서 평화통일기행 재밌다 이렇게 되면서 DMZ를 계속 걷는 일을 했습니다. 평화통일기행을 제가 많이 주도를 하고 했는데, 이번에 이걸 해보니까 아 이거는 지역에서 곳곳에서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평화순례를 이제는 행사가 거창한 게 아니니까 간단간단하게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평화순례를 주기적으로 좀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하게 됐다고 보면 됩니다.

◇조강래> 궁극적으로 그러면 '남한과 북한의 통일'. 이게 바로 한반도에서 평화운동의 본질이겠죠. 사실 듣기만 해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실제 문재인 정권서 남북 관계는 정말 드라마틱하기도 하고요, 이 어려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한기양> 처음부터 관심이 저는 있었죠 어찌보면. 제 스승이 문익환 목사님 제가 마지막 제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를 하다가 논문을 쓰고 이러잖아요. 그때 저도 우연히 발견했어요. 89년 1월 셋째 주가 우리 교회 개척 창립일이에요. 그때 첫 예배를 드리는 주보를 다 모아놓았는데, 그거를 옛날에 했는지도 모르고 딱 찾아보니까 주보 표지에 글리온선언이 딱 들어있는 거예요. 글리온선언은 1988년 남북에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세계 교회 지도자들 이렇게 스위스 글리온에 모여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이른바 권리장전과 같은 거예요. 글리온선언을 해요. 평화통일을 해야 된다. 그 선언문이 거기 딱 개재돼있는데, 저도 그때는 딱 실었는데, 싣고 보니까 지금 와서 보니까 아 이게 결국 나보고 우리 교회가 이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직접적인 계기는 2002년 5월 북한이 한창 굶주림에 시달릴 때 아이들 우유나 뭐 이런 먹을 것 때문에 지원을 하고, 모니터링 방북을 했습니다.

◇김유리> 20회 이상 방북하셨다고요?

◆한기양> 네, 그 이후로 쭉 그렇게 됐는데, 그때 직접적으로 그 일에 관심이 내 생활 일부로 확 들어와 버렸죠.

◇김유리> 방북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하셨나요?

◆한기양> 그때는 교회들이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북한 어린이 돕기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헌금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헌금을 할 때 보통 교회가 좀 규모가 있고 큰 교회에서 하지 않습니까. 작은 교회는 할 여유도 없고 그랬는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하는 교회들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게 굿네이버스를 통해서 그때 우리는 지원을 했었는데, 거기에 교단 다르고 지역 다르신 목사님, 장로님들 모여서 그거를 마침 조직을 했어요. 2002년 11월에 조직을 했는데, 그때 제가 실무책임을 맡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큰 교회 목사님들은 목회에 일이 많으니까 제가 또 그런 일을 잘하니까 그렇게 맡게 됐는데, 그러다보니까 심부름을 한 거죠. 남쪽에서 아이들 분유 때문에 계속 매달 먹을 거 물자가 올라가니까 그게 제대로 도착하고 그대로 소비되는가 하는 모니터링 방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을 계속 하다보니까 24차례 왔다 갔다 했습니다.

◇조강래> 그럼 목사이면서 동시에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목사로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통일운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한기양> 저는 이게 평화운동가와 목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라면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활동은 어차피 선교활동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을 해야 된다 이렇게 보는데, 좀 더 질문을 하시니까 북쪽에 동포가 우리 북한 동포라 그러잖아요. 그러면서도 6·25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원수가 되어버렸어요. 원수이기도 하지만, 또 함께 살아가야 될 우리 반쪽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원수라고 여긴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수 사랑해야 될 거 아닙니까. 이웃 싫어해도 이웃 사랑해야하고, 형제면 더군다나 우리는 화해를 해야 되고 손을 잡아야 하는데, 마태복음 5장 23절에 24절 말씀 보면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이 있거든 재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렇게 얘기했단 말이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저한테는 계속 울림이 왔습니다. 통일운동은 그런 차원에서 우리 교회가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라면 모든 사람들의 앞장서서 이 일에 나서야 된다 저는 그렇게 보고, 그런 차원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조강래> 한국사회에서 '통일'이라는 단어 좌우를 살펴보면, 이념적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때문일까요, 평화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더라도, 평화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로부터 비난받기 쉬운 게 현실입니다. 비슷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 경험 한 가지 좀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기양> 많죠. 얘기하면 시간이 많이 가는데.

◇김유리> 짧게 부탁드릴게요.

◆한기양> 이른 바 제가 방북을 24번 했다니까 이유를 돌아보지도 않고, 당신은 친북좌파군 이렇게 매도해버리는 겁니다. 그런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한 건데, 그걸로 말미암아서 좌익으로 혹은 좌경화됐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거 사회에서 이렇게 이념적으로 구분을 하는 것도 싫은데, 교회 안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렇다고 보면 이런 경험들 제가 사실 평화통일운동 해보면요, 평화통일이라는 깃발 아래, 혹은 북한선교라는 깃발 아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요. 북한에 올라가서 점령해버리자 이런 차원에도 북한선교, 북쪽과 화해해서 함께하자는 것도 북한선교, 이런 부분들을 어떤 식이던지 복음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인의 사랑 안에서 그 용광로 안에서 녹여내야 되는 임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김유리> 그렇군요. 평화, 거대 담론이지만 우리 삶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평화순례'를 준비하고 계시잖아요. 끝으로 우리 청취자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한기양> 시간에 쫓기는 거 같네요. 초대교회의 존재의 본질은 다섯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케리그마, 즉 말씀 선포, 두 번째는 레이트루기아, 성례전, 세 번째 디다케, 교회교육 혹은 신앙의 전수, 네 번째로 코이노니아, 우리가 잘 아는 친교, 다섯 번째가 디아코니아인데요, 친교로 번역하면 잘못된 거예요, 차별금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교라는 게 형제, 복음 안에서 한 형제가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종을 차별해서도 안 되고, 남녀를 차별해서도 안 되고, 종과 주인의 차별도 없고, 빈부차도 없다. 한 형제다. 그때 당시에 노회와 주인이 같이 한 형제자매가 됐잖아요. 그게 코이노니아입니다. 디아코니아 역시 사회봉사고, 나눔이고, 섬김인데요, 오늘날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또 반대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는 혐오와 차별이 교회에서는 오히려 없어야 된다. 그리고 인권을 오히려 보장해야 된다. 이게 교회의 본질적인 내용인데, 어떻게 된 판인지 정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너무 안타깝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보다 더 깊은 신앙적 성찰이 있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김유리> 네, '시사팩토리 100.3' 목요판, 오늘은 정전 67주년을 앞두고 한기양 목사님과 함께 인터뷰 가져봤습니다. 목사님,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기양> 감사합니다.

◇조강래> '역마다 백두산표를 안 팔아. 나만 미쳤다고 쑥떡인다. 과연 누가 미쳤나. 흑발이 백발이 되도록 귀향표를 살려는 놈이 미쳤나. 기어이 못 팔게 하는 놈이 미쳤나' 통일을 꿈꿨던 고 이기형 시인의 '나는 간다' 일부 내용입니다. 제 고향은 울산이지만, 백두산 행 기차표 한번 끊어보고 싶습니다.

◇김유리> 오늘 시사팩토리 100.3 목요판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술에 강승복 엔지니어, 음악에 길기판, 진행에 김유리, 조강래, 작가에 장민창, 조연출에 엄유미, 연출에 김성광 PD였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